“3김이 만든 앙시앵레짐 날려버리자”


[대연정 논란 연쇄인터뷰_유시민 의원]

현행 선거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그 어떤 후임 대통령도 반드시 실패
특정 지역 기반한 대결의 정치문화 극복하는 사활적 문턱에 우리는 서 있다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대변자. 요즘 유시민 의원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만큼 노 대통령의 의도와 노림수까지도 정확히 읽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여당 안팎에서조차 “도무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드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에 대한 해설사, 분석사,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민주화 시대가 개막된 1987년 특정 지역의 집중적 지지에 기반한 ‘1노 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지역을 기반으로 쪼개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면 대통령이 되도록 만든 정치 시스템 작동원리인 앙시앵레짐을 임기를 마치기 전에 마감하는 필생의 과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 정서를 거스르며 임기 단축, 2선 후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연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지역적 대결구도를 끊임없이 양산하는 현행 선거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자신을 앞서간 민주화 시대 개막 이후 3명의 대통령(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실패처럼 뒤를 이을 그 어떤 후임 대통령도 반드시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연정을 제안한 진정한 뜻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에 표출된 국민적 지지율이 그 정당이 획득한 의석 점유비와 일치하거나 완전히 가깝게 접근하는 선거제도 개편 딱 하나”라며 “이것만 된다면 중대선거구든 독일식 비례대표든 또는 내각제든 4년 중임 정부통령제든 정치권에서 합의해오면 다 받아들이고, 당장 임기 단축이나 2선 후퇴를 요구해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인터뷰 내내 “특정 지역에 기반한 대결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고 선진화로 가는 사활적 의미를 지닌 문턱이자, 지역구조 타파의 필요조건인 이 선거제도만 개선될 수 있다면 노 대통령은 지금 당장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도 자신은 대통령으로서의 직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조망할 때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노통이 왜 연정에 올인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연정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두달 사이에 더 약화됐고, 이제 핵심 지지층과 개혁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왜 이 시기에 이 방식이냐” “질린다. 그만 좀 하자”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 노 대통령은 왜 그리 연정에 목을 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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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박승화 기자)


=역사를 보는 눈과 관계가 있다. 우린 1960년대 중반부터 79년까지 20년 가까운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산업화의 길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80년에 종식돼야 할 산업화 시대를 억지로 연장한 전두환 정권 7년을 거쳐, 87년 민주화 시대가 시작됐다. 산업화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의 전환은 정치·경제·언론·권력구조·선거제도 등 대한민국 전체 시스템의 성격이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서 이런 각종 하위 시스템을 코디네이트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 시스템을 결선투표 없는 단순다수제, 5년 단임 대통령제로 짰다. 불행한 것인데, 체육관 선거를 없앴지만 한국 사회가 민주화 시대의 첫걸음을 딛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네 사람의 지도자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모두 특정한 지역의 집중적 기반을 가진 지역의 리더였기 때문에 그 지역을 기반으로 (국민을) 쪼개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면 대통령이 되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 제도의 첫 대통령인 노태우도 36.8%로 당선됐다. 결선투표를 없애 정치세력 사이에 상호 연대와 제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체계적·구조적으로 국민 다수의 과반수를 득표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처음부터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 매우 약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짰다. 왜? 1노 3김이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 져도 다음 선거에 또 나올 수 있게, 5년만 하고 한명씩 보내버리고, 반대 세력이 연합해 괴롭히는 것을 막고, 야당을 하면서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결선투표도 도입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역시 결선투표는 없고, 비례대표 비율은 지극히 적고, 인구편차는 대단히 큰 소선거구제를 선택했다. 전국 평균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고 특정 지역구나 지역의 집중적 지지를 받는 정당이 유리하도록 구도를 짰다. 각종 시스템의 정점인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방식이 이런 대통령 선거제도와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재편되면서 군, 족벌언론, 족벌재벌, 관료, 정치인 등 5대 지배집단과 다른 하위 시스템도 여기에 적응했다. 그전에 폐간·고문당하지 않으려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언론이 독립하면서 특정 정치세력과 선택적으로 유착해 정치권력 창출에 영향을 미치고, 이런 권언유착을 통해 사업적 이익을 도모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재벌은 군부권력 밑에 무릎 꿇고 술 따르고 엄청난 돈을 갖다바치는 대신 각종 특혜를 받던 데서 자생력을 갖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옛날 버릇을 못 버리고, 무릎 꿇지 않고 돈으로 정치권력 창출에 영향력을 행사해 지배하려 하고 있다. 돈으로 정치권력 운영에 개입해 사실상 배후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생존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87년 이후 5대 지배집단 내부에서 서열이 바뀌어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떠오른 정치인 집단은 재벌과 합작하고 때론 뒤에서 매수하는 관계로, 언론과는 선택적으로 유착하는 관계로 변했다. 1987년 민주화 시대 이후 거의 20년 가까이 이렇게 해왔다. 이것은 이른바 앙시앵레짐이다. 그런데 노무현이 민주화 시대의 끝자락에 등장한 것이다. 5대 지배집단에서 볼 때, 노 대통령은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사병 출신에 이 집단들을 밑에서 연결하는 네트워크 인프라인 학벌도 없었다. 정치인 집단 사이에 인맥도 없고 돈도 없다. 족벌언론과는 전쟁 상태였다.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산업화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전환한 이후에도 내부의 서열관계를 바꾸면서 한국을 지배해온 이들 5대 지배집단, 그 지배체제인 앙시앵레짐에 경종을 울리는 정치인으로 노무현이 나타난 것이다. 노무현의 지금 현재 모든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프로그래밍 됐다. 민주당 안에서 어떤 면을 따져도 후보가 되기 어려운 사람이 후보가 됐고, 결국 대통령까지 됐고, 지금까지 왔다. 내가 노빠로 하는 말이지만, 노 대통령은 진짜 찾아보기 어려운 스테이트맨, 정치가다. 이 사람은 지금 정말 이 민주화 시대, 이 앙시앵레짐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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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연전 제안을 내놓은 뒤 총 다섯 차례의 언론인 감담회를 열었다. 8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방언론사 편집국장단 간담회.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노 대통령의 진정성은 87년 민주화 시대 이후 지속돼온 20년 묵은 앙시앵레짐을 혁파하는 것이란 얘긴가.


=그렇다. 노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 20년을 지배해온 앙시앵레짐에 중대한 변경을 이뤄내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역할을 “구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규정한 것이다. 자기 이후에 등장할 지도자가 누구든 정말 효율적으로 국민의 뜻을 모으고 받들고, 국민과 대화하며 합리적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를 만드는 게 자신의 역사적 책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앙시앵레짐을 지배하던 5대 지배집단은 민주화 시대에도 상호 협업, 선택적 유착, 부분적 갈등관계를 통해 경쟁하고 협조하면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퉜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부정부패가 저질러지고, 원칙이 파괴되고, 정의가 훼손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건 온전한 민주 체제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정치문화가 적대적으로 갔다. 왜? 국민이 관련된 문제를 이 정치의 장소로 끌어들여 녹이고 해법을 찾고 집행해야 하는데,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방식이 민주화 시대의 패권다툼을 위한 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당시 특정 지역에서 강한 기반을 갖고 있는 4명의 유력한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패권을 도모하기 위해 대결적 제도를 만들고, 권력이 다른 데로 넘어갈 수도 새 세력이 진입할 수도 없도록 진입장벽을 높이 쌓은 뒤 그 제도 안에서 자기들끼리 죽기 살기로 권력게임을 하도록 설계해놓은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가지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민주화 시대를 20년 가까이 개척해왔다. 노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를 열었던 지도자들이 만든 이 대결의 정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게임 규칙을 변경하고 (대통령직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만 변경하고 떠나면 대한민국이 다 잘될 것 같다는 게 노 대통령의 현재 생각이다.


DJ가 후반기에 망가진 두가지 이유


나름의 설득력은 있는데, 너무 단순화한 것 아닌가.


=노 대통령이 지금 정치문화와 제도를 역설하는 이유가 뭐겠나. 그는 전임자 3명을 다 봤다. 또 후임자들도 생각한다. 노태우는 36% 지지로 당선돼 1988년 총선에서 제1당이지만 소수 여당이 됐다. 40%의 지지율도 안 된 대통령이 국회의 다수도 못 가지자, 야당이라는 것을 자기 아이덴티티로 삼아서 자민련 같은 꼴보수 정당과 평민당 같은 상대적 진보 정당이 다 합쳐 야당연합을 만들어 여당을 견제하는 대결적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한 1년 해보고 못하겠다 싶으니 다음 권력을 YS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자기의 남은 임기를 쉽게 가는 선택을 한 게 바로 3당 합당이다. 그렇게 합쳤지만, 임기 말인 1992년 총선에서 또 졌고, 다시 여소야대가 됐다. YS가 대통령이 됐지만, 이미 여소야대였다. 그래서 안기부를 동원해 도청하고, 약점 잡고, 안기부 돈과 재벌 돈 받아 야당 의원들을 매수·협박해 과반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만신창이가 돼고, 나중에 아들 문제가 터지면서 망가졌다. YS 정부 중반기인 1996년에 총선 치렀지만 또 여소야대가 됐다. DJ가 1997년 정권을 잡았지만, 잡아봐야 또 여소야대였다. 결국 ‘임대 의원’이란 욕을 먹으며 여당 의원들을 자민련에 꿔줘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고, 장관도 시켜준 것 아니냐. 하지만 결국 2000년 총선에서 깨지고 식물 대통령처럼 됐다. 이게 민주화 시대 개막 이후 3명의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걸어온 길이다. 성공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이 대통령들의 자질이 나쁘냐?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죽기 살기식 선거, 계보정치, 정당조직 안에 부패의 암덩이를 키워 정당 자체가 부패의 덩어리가 됐기 때문에, 그 어떤 지도자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게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까지 15년간 반복돼온 역사다. 노 대통령은 자기 전임자를 봤고, 본인 스스로 거기에 도전하고 신당을 하다가 탄핵까지 당하면서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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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3당 합당 뒤 손을 들어 기뻐하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노태우 당시 대통령,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 한 정당 내에서 집권자가 후계자를 선택해 정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 한겨레)


지난 총선 때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과반수인 152석을 줬는데도 제대로 개혁 드라이브를 못해놓고, 이제 와서 정치구도만 탓하는 것은 아닌가.


=과반수가 됐어도 대결의 정치문화 때문에 국회를 봉쇄하고, 점거당하고…. 그래서 다수를 갖고 있다는 게 큰 의미는 없었다. 노 대통령은 2년 반 직무를 수행해본 결과 전임자가 집권 후반기에 망가진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그분들이 몸담았던 정당이 부패의 덩어리였다. 도덕적으로 온전하게 지도자를 지킬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대결적 정치문화였다. 첫째 문제는 정당 개혁, 깨끗한 선거, 신당 창당과 기간당원제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한계는 있지만, 더 이상 부패의 암 덩어리가 퍼지지 않는 정당으로 발전하고 있으니 계속 더 노력하면 된다. 그런데 대결적 정치문화는 대통령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임기 단축, 사임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노 대통령은 정말 후임자도 생각해본다. 지금의 선거제도가 그대로 간다고 해보자. 열린우리당의 김근태·정동영 장관 이런 분이 집권해도 여소야대다. 세번 연속 집권한 정당에 절대 과반수 안 준다. 그러면 그분들이 노무현 대통령보다 용빼는 재주가 있겠나. 호남당인 민주당에 영남 후보가 나가 대통령 선거에 이기고 재임 중 (영남 인사들에게) 장관직을 많이 주었어도, 겨우 영남에서 30%대, 40%대 받아 4명 당선되고 다 죽었다. 정동영·김근태 장관이 대통령 된다고 영남에서 단 한석이라도 얻을 것 같으냐. 대한민국 정치 지형은 완전히 2002년 이전 지역대립 구도로 돌아갈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정체성에 아무 공통점이 없지만 야당이라는 아이덴티티로 연합해서 여기에 맞설 것이다. 한나라당의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박씨가 되면 곧바로 여소야대다. 한나라당은 120여석밖에 안 된다. 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손잡겠나, 민주노동당이 손잡겠냐. 어림도 없는 소리다. 민주당까지 세 야당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2009년 2월 박근혜씨가 대통령에게 취임하면 총리 인준도 안 해준다. 한나라당이 지난 8년 동안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하겠다고 복수심에 불타지 않겠나. 지지자들은 독기 품고 덤비고, 한나라당이 낸 법안 통과시켜주자면 돌 맞을 수도 있다. 한동안 총리도 장관도 없고 대통령만 있는 혼돈이 계속될 것이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면 그 순간부터 레임덕에 빠진다. 그러면 한나라당이 야당 의원을 빼올 수단이 있나? 합당할 대상이라도 있나? 옛날처럼 안기부 돈 쓰고, 도청하고 협박할 수 있나? 노 대통령이 부당한 권력 사용은 다 해방시켜놓았다. 결국 박정희씨가 다시 부활해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대결적 정치문화의 밑바탕에는 이런 문화를 끊임없이 발생시키는 선거제도가 있다. 이게 노 대통령의 귀납적인, 동시에 연역적인 결론이다. 이론적으로 봐도, 결론적으로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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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는 내각제를 고리고 JP와 공조를 이뤄냈고 1997년 정권을 잡게 되지만 정국은 여전히 여소야대였다. (사진/ 이용호 기자)


우린 지금 암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직을 걸 정도로 중요한 문제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열린우리당 안에도 제법 있다. 또 노 대통령의 당선, 열린우리당 창당과 2004년 총선 압승 등의 결과를 지역주의 완화 징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지역감정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주관적으로 경고하고 헤집는다고 비판한다.


=대통령께서 여당 의원들의 그런 질문에 “암이 지금 아프지 않다고 암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무현이라는 특이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장기가 터지고 아픔이 생기는 게 잠시 진정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존재는 지역구도에 대한 아편에 불과하다. 잠시 그것이 나아지는 듯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박근혜·이명박 가운데 한 사람, 정동영·김근태 가운데 한 사람이 다음 대선에서 붙었다고 생각해봐라. 정치 지형은 2002년 이전의 지역구도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암이 그대로 안에 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이 조금만 암세포 발호에 좋은 조건이 되면 바로 커다란 암덩이로 자란다고 보고 있다. 이 진단은 옳다고 본다. 2002년 대선도 똑같은 것 아니냐. 노무현 후보가 자기 입으로 영남 후보라고 얘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호남에서 왜 그리 많이 밀어줬나. 저 사람이 영남에서도 많이 득표할 수 있다, 적자로 가업 계승이 안 되니 양자를 들여서 밀어주기만 하면 이회창을 이길 수 있다,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기대 하나로 노무현 후보를 광주에서 확 밀어준 것 아니냐. 이것은 비극적이다. 암 환자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은 것과 똑같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모르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투약된 모르핀 약이 암을 뿌리뽑겠다고 지금 나선 것이다. 지금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냐. 그런데 호남에서는 “니가 뭔데?” 하고, 임원혁 박사는 이것을 ‘영남 민주화 세력의 고민’이라 표현했다. 이것은 사태를 완전히 잘못 보는 것이다.

현재의 인물 구도로 볼 때 다음 대선과 총선은 모두 2002년 지역구도로 완전히 복귀하게 돼 있다. 영·호남이 쪼개지면 중부권 신당, 자민련도 또 커질 것이다. 충청도는 가만있겠냐. 이 악몽을 우리가 민주화 시대 20년 동안 겪을 만큼 겪었는데, 노무현 임기가 끝난 뒤 대선, 총선에서 또 겪자는 것 아니냐. 이건 나라를 망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맞다. 국민은 이것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지금 지역구도 문제가 개선·완화되고 있고, 이대로 가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급한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민들의 요구를 거역하고 있다. 몰라서 거역하는 게 아니라 계속 모르핀을 투여하는 방식으로는 합리적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의원들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보다 당내 패권을 잡고, 상대 당을 흠집 내고 증오를 조장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일에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리는 이런 현실에서는 대한민국은 선진화 시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확고부동한 인식이다. 이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지만, 국가 지도자로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봐야 한다.

그런 역사적 인식이 노 대통령의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현재 국민은 연정에 대해 시큰둥하다. 무슨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연애편지만 2개월 가까이 보냈지만 큰 반향이 없어 보인다.


= 이 문제가 편지 몇번 쓰고, 기자간담회 몇번 하고 국민과의 대화 한번 한다고 될 것 같으면 옛날에 됐지 왜 안 되겠나? 우린 지금 암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암 환자가 진단하고 수술하자고 한다고 동의하지 않는다. 이때 대통령의 선택은 두 가지다. 암인지 잘 알고, 이 암을 안고는 건강하게 살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음에도 국민은 큰 질병이라고 생각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접고 내 임기 동안 국민이 원하는 것 충실히 하고 후반기를 관리하며 임기를 끝내는 것이다. 이것도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 두 번째, 국민을 거역하면서 계속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문제도 제가 할 만큼 하고 있는데요, 이 문제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선진화, 경제 활성화로 갈 수 없습니다. 정치적, 국민적 분열을 끊임없이 발생시키는 이 암덩어리를 떼어내야만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도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그런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저를 나무라셔도 저는 이 문제를 계속 밀고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노 대통령은 두 번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지자들은 어떻게 뽑아준 대통령인데 그렇게 쉽게 직을 던지느니 2선 후퇴한다느니 얘기하냐고 불만을 갖는다. 그게 노무현의 딜레마이자 연정의 한계 아닌가.


=지지세력들은 이미 두번 집권했고 또 잘해서 다음에 집권하면 되지, 왜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던진다느니 한나라당하고 연정을 한다고 하느냐고 비판한다. 노 대통령이 택힌 이 방법이 너무나 독특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선거법과 헌법 두 가지를 손봐야 한다. 정치권이 모여 좀 덜 싸우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끼리 지역으로 쪼개지는 선거는 더 하지 말고 색깔대로 정당을 만들고 발전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한다면 제일 좋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김에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로 바꾸자, 또는 아예 내각제 하자고 해도 좋다. 노 대통령은 무엇이든 다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런 합의를 할 경우 불가피하게 대통령의 임기가 단축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하야라고 하지 않고 임기 단축을 얘기한 것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임기 단축, 2선 후퇴를 당장 하자는 게 아니고,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까 정치권이 그렇게 합의해오면 내 임기를 왕창 줄여도 군말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이)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듣나. 대통령의 말은 대결구도를 양산하는 선거제도를 개선하는 데 자기가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 임기 신경쓰지 말고 정치권이 협상하고 합의하라는 것이다.

위헌이라 우기는 지식인들 한심하다


대통령의 임기 단축, 2선 후퇴 등의 발언에 대해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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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박승화 기자)


=현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고친다. 그러면 정치권이 총선과 대선 주기를 조절해야 하니 대통령이 임기를 좀 줄여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오케이, 임기 6개월 줄이는 것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다. 혹은 내각제 개헌에 합의하고 총선거 전에 헌법을 개정했다. 그런데 헌법 발효 시기를 새 헌법에 의한 최초의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는 날로 한다. 그 경우 대통령은 총선 전에 8개월이든 10개월이든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것이다. 내각제 합의하고, 헌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로 8~10개월 더 운영하는 게 의미가 없다. 때문의 의회 다수파 또는 다수파 연합이 지명하는 사람을 총리로 임명하고, 모든 권한 넘기고 현행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해야 할 역할에만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2선 후퇴의 의미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얘기다. 하나도 현행 헌법에 어긋나는 게 없다. 법률적으로도 완벽하다. 대통령이 변호사 아니냐. 법률을 다 검토해봤을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나. 모든 것은 정치적 과정에 의해 되는 것이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헌법, 법률의 개정에 뒷받침받으며 합의만 되면 법률적 논란은 다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위헌이다 뭐가 어긋난다 이렇게 얘기하는 지식인들은 보면 나는 한심해서 하품이 난다. 대통령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단 10분이라도 고민하고 생각해봤냐? 무슨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노 대통령이 무슨 말만하면 종소리 듣고 침 흘리는 개처럼 위헌이니 뭐니 이런 얘기부터 한다. 박근혜 대표도 진짜 문제다. 일국의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에 도전하려는 사람 아니냐. 자기도 전직 대통령들을 봤을 것 아니냐. 자기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유정회를 만들었나. 선거를 통해 여대가 되기 너무 힘드니 3분의 1을 직접 임명해서 인위적으로 과반수를 만든 것 아니냐. 아버지가 그렇게밖에 못했는데, 자기는 다르게 할 것 같은가? 아버지를 보고, 자기를 앞서간 민주화 시대 3명의 대통령을 봐라. 대결적 구도가 그 대통령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한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안 된다. 이런 것을 다 알면서도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권력욕에 눈의 먼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뭘 생각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처럼 대통령 될 생각이 없는 놈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과거의 대통령, 지금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점검하고, 정당을 바꾸려 노력하고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주장하는데. 의석 수 많은 영남을 깔고 앉아 기득권이나 지키면서 대통령이 제한한 것들에 대해 그저 구석에 처박혀 응수 잘못하면 말려든다고만 한다면…. 그것은 내가 볼 때 한나라당의 불행이다. 그 당의 대표이고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고건씨 다음으로 (국민적 지지율이) 많이 나온다는 박근혜씨가 현직 대통령이 국가 선진화로 가는 데 필요한 합리적 정치문화를 만들 수 있는 제도의 변경에만 합의해준다면 권력도 주고, 임기 단축도 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는데 이것에 대해 심각한 고려도 없이 경제도 어려운데 경제나 챙기지라는 단세포적 얘기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주장을 떠나 그 표현방법에 저항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대통령의 표현방법이 어떠니 이런 식으로 장님 코끼리 뒷다리 만지듯이 하는 이른바 유력신문에 글쓰는 지식인들도 반성해야 한다. 적어도 그 표현과 절차를 논하기 전에 이 제안의 핵심에 있는 문제의식이 뭔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보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노 대통령은 이것이 쉽게 한 얘기도 아니고 가벼운 얘기도 아니고, 즉흥적으로 한 얘기는 더욱 아니다. 치밀하게 검토하고 계산해서 정치권과 국민에게 의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민 여러분,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가 앞으로 갈 수 있고, 국정 책임자로서 지금까지 국정을 운영하면서 제가 느낀 결론입니다, 이 문제 한번 검토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인데…. 돌아오는 대답이 ‘너 그렇게 가볍게 얘기하지마’ ‘너 왜 그렇게 즉흥적으로 얘기하냐’ ‘너 왜 미리 상의도 안 했니’ 전부 이런 얘기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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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30일 열린우리당 의원 초청 만찬. 노무현 대통령은 여기서 "새로운 정치문화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전제된다면 2선 후퇴, 임기 단축을 통해서라도 노무현 시대를 마감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 측면도 있지만, 지지자들이 혼돈을 겪는 것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는 본질적이지 않다며 지지자들에게 연정을 강효하는 듯한 대통령의 태도다
.

=유권자들, 지지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나도 한나라당이 싫지. 그러나 싫다는 감정에 입각해 계속 이런 대결적 정치를 만드는 선거제도를 유지하면 어디로 가죠? <한겨레>에 칼럼 쓰는 분들 말처럼 계속 한나라당은 극복의 대상이면? 물론 극복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선거제도가 이렇게 돼 있는 이상 한나라당은 절대 안 망한다. 50년 가면 망할 수도 있지만, 예견할 수 있는 미래에는 때려죽여도 한나라당이 극복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정해야 한다. 공생해야 한다. 공생하면서도 대한민국이 제 갈 길 갈 수 있도록 만들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국민이 한나라당을 살려나가는데 인정 안 하고 어떻게 할 것이냐. 지금은 이 민주화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등 몇 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은 이제 지극히 자유로운 민주공화국으로 왔다. 이런 미완의 과제는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면서도 충분히 시간을 갖고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그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우리 정치사회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선진화의 시대로 가야만 한다. 경쟁과 공존, 대립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정치 풍토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니 그런 인프라를 짜자고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선거구제 개선만 해주면 다 준다는 것 아니냐.

몇몇 여당 의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갖는 또 다른 의문은 선거제도만 고친다고 오랜 지역주의가 극복되냐는 것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의 논리가 너무 단순화됐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다.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이것만 되면 다 된다는 게 아니라, 선거구제 개편은 선진화로 가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 의지가 강렬하고, 표현도 정식화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분열적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구도를 혁파하고, 지역구도 혁파를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나는 이런 대통령의 표현이 선거구제 개편의 중요한 것이라는 한 가지 취지를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정당 지지가 그대로 그 정당의 의석 수로 반영될 수 있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 이것이 더 정확한 용어일 것이다. 다만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면 밋밋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국민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왜 더 충실히 자신의 의중을 설명하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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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3월12일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뒤 유시민 의원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우 기자)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 대통령의 진심, 진짜 원하는 것은 선거구제 개편 딱 하나이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선거구제의 개편이고, 그 개편이 중대선거구든 독일식 비례대표든, 선거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그 정당이 획득 의석 점유비와 일치하거나 완전히 가깝게 접근하는 선거제도, 이것이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것 이상 요구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헌법을 개정해 내각제든 4년 중임 정부통령제든 그것은 정치권에서 합의해오면 다 받아들이겠고, 그건 대통령 자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임기 단축,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해도 한다. 2선 후퇴 지금 당장 하라면 해주겠다는 것이다. 단, 대통령이 원하는 오직 한 가지는 선거구제 개편이다. 나머지는 다 거기에 부속된 것이다. 각료의 절반을 주겠다, 이런 모든 것은 무엇이 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선거구제 개편만 된다면 지금 당장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도 자신은 대통령으로서의 직분을 다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것은 대한민국이 민주화 시대를 마감하고 선진화 시대로 가는 사활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게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이고 진심은 이것 한 가지다. 나머지는 뭐냐? 나머진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의미를 설명하는 즉시, 술수로 몰린다. 대통령은 외길이다, 외길. 대통령이 4년 중임제다, 내각제다 또는 연정이 안 받아들여질 때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선거구제 개편이야말로 선진화 시대로 넘어가는 문턱이라는 이 인식의 호소력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정략이 된다. 나는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연정, 내각을 다 주는 연정, 임기 단축을 할 수 있는 연정도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는 이렇게 설명이라도 하는데, 대통령이 내가 한 말 했다고 생각해봐라. 난 열린우리당에도 얘기했다. “대통령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마라. 그것은 대통령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인정해야 하고, 우리 힘으로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당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 않든 대통령의 선택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앞으로 더 확실하게 일어날 일로 가정하고 우리 선택을 결정하자”고 얘기했다. 그런데 계속 대통령에게 본의가 뭐냐, 설명해달라. 이런 문제가 생긴다, 지역에서 여론조사 지지율이 어떻다고 계속 설명해달라고 한다. 그러니 대통령은 신경질이 나고, “이것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져서 당을 나가겠다는 호남 의원들이 계시면 제가 당을 나가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자기가 대통령의 입장이 돼서 정말 5분만 진지하게 고민해봐라. 그러면 설명 요구에 대통령이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가치 있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있다


어차피 대통령이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내년쯤이면 누구도 이 회오리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 성패를 어떻게 보나.


=원래 모든 가치 있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있다. 대통령은 지금 최대 리스크가 걸린 일을 벌이고 있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선거구제 개편도 안 되고, 정치개혁도 안 되고, 대통령은 욕만 먹고 퇴임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 책임지면 된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소신껏 하는 것이다. 의원이 잃을 게 국회의원 배지밖에 더 있나. 뭐가 그리 두려워서 지지율 떨어지면 징징거리고,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나. 우리는 무슨 박철언씨 회고록에 나오는 것처럼 범죄를 저지른 것도 없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하려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해 국민에게서 칭찬받지 못하는 게 가슴 아플 수 있지만 박철언씨 회고록이 증언하는 전임 정권의 ‘범죄의 재구성’처럼 노무현 정부가 국가권력 그 자체를 범죄로 만들거나 범죄적으로 운영한 것은 없다. 난 그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왜 그렇게 기가 죽었냐. 지지율이 20%대면 뭐 어떠냐. 우리가 하고 있는 올바른 일 잘 평가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마음이 불안해 하던 일도 멈추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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